우리 지갑 속 5만원권의 신사임당 초상화와 5천원권의 율곡 이이 영정을 그려낸 대한민국 한국화의 거장, 일파(一坡) 이종상 화백이 2026년 9월 8일 향년 88세로 별세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매일같이 마주하는 화폐 속 인물들의 원형을 그려낸 인물인 만큼, 고인의 타계 소식은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평생을 우리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시각화하는 데 바친 이종상 화백의 생애와 그가 남긴 묵직한 업적을 명확하게 짚어드립니다.

화폐 속 인물을 그린 화가, 이종상 화백은 누구인가요?

193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이종상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평생을 한국화의 현대화와 전통 회화의 복원에 헌신한 예술가입니다.

화가로서의 명성을 넘어 그가 대중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계기는 바로 대한민국 현행 화폐의 표준 영정 제작입니다. 1970년대 국가 표준영정 심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5천원권 지폐의 율곡 이이(1977년 지정)와 1만원권의 세종대왕(1973년 지정, 현재는 신권 발행으로 변경), 그리고 2009년 발행된 5만원권의 신사임당 초상화까지 모두 이종상 화백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화폐의 절반 이상에 그의 예술적 혼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사실: 1만원권 세종대왕 영정도 그렸을까?

지폐 영정과 관련해 흔히 헷갈리는 부분은 1만원권 세종대왕 영정과의 관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 유통되는 1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표준영정 역시 이종상 화백이 그린 작품이 맞습니다. 5천원권(율곡 이이), 1만원권(세종대왕), 5만원권(신사임당)까지 대한민국 최고액권 라인업의 표준 영정을 모두 그려낸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1만원권의 경우 오랜 세월이 흐르며 화폐 디자인이 개정되었고, 현재 사용되는 구권과 신권의 세부 묘사에서 고인의 초기 표준영정 원본이 지닌 역사적 가치가 깊게 녹아 있습니다.

독창적인 예술 세계와 주요 업적

이종상 화백은 단순히 인물화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화의 영역을 벽화와 설치 미술 등 다방면으로 확장한 선구자였습니다.

구분

주요 활동 및 업적

화폐 영정 제작

5천원권 율곡 이이, 1만원권 세종대왕, 5만원권 신사임당 표준영정

대형 벽화 작업

충무공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 및 현충사 대형 벽화 제작

독창적 화법

'원형상(元形相)' 시리즈 등 한국적 오행 사상을 담은 추상·구상 작업

문화재 복원

석굴암 본존불 보존 과학 조사 및 문화재 위원 활동

특히 고인은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영토 수호와 역사 인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독도에 들어가 직접 현장을 스케치하고 '독도 문화 영토'를 넓히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고인이 남긴 발자취를 기리며

화폐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매개체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신을 국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게 한 이종상 화백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붓끝으로 살려낸 수많은 영정과 예술적 유산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생전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